종말의 바보 – 지구 종말 3년 전…

종말의 바보

얼마 전, 알라딘에서 온 메일 중에 “종말의 바보”라는 만화책에 대한 소개글이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소개글을 자세히 읽다보니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만화책은 무시하고) 이사카 코타로의 원작 소설을 주문했다.

책 말미에서 옮긴 이가 이야기 하듯, 이사카 코타로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내가 가장 먼저 읽었던 “사신 치바”는 아예 주인공이 사신(死神)이 자신에게 할당된 이들이 죽어야할지 말지를 관찰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암울하지도 않고 차분하며 오히려 밝은 희망이 느껴지는 책이었기 때문에 이번 책도 차분하면서 밝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행성 충돌로 인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이 들려온지 5년 후. 이제는 3년 밖에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5년 전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와 달리 이제는 모두가 평안한 세상이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자살하거나 소동에 휩쓸려 죽거나 또는 감옥에 갔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니 약간은 소심한 이들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게도 여러 가지 상황들이 발생하고, 나름대로 생각들이 존재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아기에 대해 고민하는 부부. 매스 미디어에 의해 가족들이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복수하러온 형제, 행성 충돌 소식으로 인해 타이틀 전이 취소된 킥복서,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망루를 만드는 노인 등 다양한 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모두가 가족을 비롯해 많은 것을 잃었고 상실감이 큰 이들이다. 어디에서 읽은 글에는 현재 경제 위기 속에서 무기력하고 자포자기한 일본인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심각한 취업 난 속에 많은 젊은 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쓰는 후리터들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들이 늘어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은 희망을 안고 다시 일어선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소설 속 킥복서처럼 현재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기도 하고,  남들이 바보짓이라고 생각해도 꾸준히 망루를 만들고 있는 노인, 그리고 만약 3년 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점장 등 현재 상황에서 성실히 임하는 것이 종말과 싸워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안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태어나더라도 2년 밖에 못 살 아이지만 낙태시키지 않겠다는 부부, 그리고 노파에게 손녀인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의 이야기 속에서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이 책은 “종말의 바보”, “태양의 약속” 등 총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있다. 이 소설은 사신 치바와 같이 여러 단편 소설이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앞에서 주인공이었던 인물들이 다른 단편 소설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등 읽는 내내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차분하고 어둡지 않게 표현하면서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에 아마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읽었더라도 이사카 코타로가 맞지 않나 확인했을 것이다.

항상 그러하듯이 크게 재미있다기 보다는 읽은 내용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는 사막 같은 장편보다는 이러한 단편 소설들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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